2. 박서영 시집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me and my /



지리멸렬한 잡생각과 자살 충동을 도저히 멈출 수 없어서 예약을 앞당겨 병원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박서영 시인의 유고 시집도 한 권 샀다. 내가 모으고 있는 시인선의 가장 최근작이기도 했지만 책장을 넘겨보다 거짓말처럼 '부서진 여자의 뒷모습을 완성할 수 있을까' 라는 구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비록 내 꿈은 파도처럼 아름답게 부서진 게 아니었지만 이미 세상에 없는 한 여자의 것이었던 슬픔이 내 악몽과 닮았다는 점이 내게 위로가 됐다.



더 깊이 만지기 위해 살을 파고들어가
서로의 뼈를 만지면서부터 대부분은 불행해졌다
처음엔 보여주었고 나중엔 말해주었고
천천히 부풀었다가 찢겨져 흩날려버리는 것


한 입만 하다가 두 입만 하다가 세 입만 하다가
첫 한 입을 잊어버리는 일


(...)


포옹을 잊지 않은 긴 팔로 너를 안아줄 테니
뼈만 남은 꽃나무 유골, 다시 사랑을 시작하라


<입술, 죽은 꽃나무 앞에서>





죽음만이 찬란하다는 말은 수긍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들에겐 담담한 비극이 무엇보다 비극적으로
내게 헤엄쳐왔을 때
죽음을 정교하게 들여다보는 장의사의 심정을 이해한 적 있다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물결들이 써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
밤물결들이 은은하고 생생하게
한 사람과의 추억을 기록하고 있을 때


슬픔은 최선을 다해 증발하고 최선을 다해 사라지려고 노력했다


내 심장의 바닥을 들여다보며 울고 있을 때
왜 타인의 바닥도 함께 보이나
위로의 말은 집어치워요 그런 눈빛도


널 따라간 여름날 저녁에 탄생한 눈물이 있다
앞으로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믿음이라는 말의 안쪽을 흘러다니는 흉흉한 거짓말처럼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은 누군가에겐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믿음>






그 와중에 잊고 싶다는 말이 개미처럼 우왕좌왕한다. 그 와중에 미안과 무안은 깊은 방을 만들고 있다.
나는 방을 잃고 현관문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너의 손목을 붙잡고 있다. 오로지 너였을 한 사람을 발굴하듯이.
그래서 발굴된 영혼이 다른 영혼을 찌를 듯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속에서.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홀수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