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피쉬본
me and my /

내 날에 내가 베일 때, 같은 자리에 몇 줄씩 피가 맺힐 때, 조용히 뾰족한 것들을 숨겨두는 애인이 있었다. 과일 깎아 먹을 칼이 없어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귀여운 과도. 뾰족한 것들은 내가 갖지 못하게 하는 애인이 있었다. 그게 사랑인줄로만 알고 모서리 둥근 세상 속에서 작은 고양이와 동그랗게 몸을 말아 잠든 채 자라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뾰족하고 나는 자라야만 해. 맨발로 도망친 곳에서 새살에 부딪히는 칼들 어쩌면 말들 어쩌면 사랑 같은 것들.

씩씩하게 말했지만 사실 산다는 건, 사람을 믿는다는 건, 당신이 나의 애인이 된다는 건 예전의 나에겐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왜냐면 여긴 뾰족한 것 투성이잖아요. 우린 스스로를 상처내고 서로를 찌를 거잖아요. 그치만 뾰족한 세상에 나와서도 저에겐 모서리 둥근 세상이 있었는데요 하고 말하는 것도 정신나간 짓이지. 피쉬본 선인장을 사준 사람에겐 더더욱 잘못하는 일이지. 애틋한 사람에게선 도망치지 않고 서로의 빛나는 단도를 갈아줘야지. 찌르지 않게 조심하면서 찔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오래 안아줘야지.

사랑 안에 생선뼈가 자라는 일은 원래 아픈 걸까. 부끄럽고 볼품 없는 내 고백들과 꼭 이기지 않아도, 가끔은 져도 된다는 위로. 내색하지 않는 선한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미운 건 오히려 나였다는 산울림의 가사가 흐를 때마다 속절없이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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