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뱃속의 에일리언
me and my /



유령에 대해 생각하는 소녀를 알아.*
생각이 너무 많아서 쓰지 않으면 터져버리는 소녀를, 겁도 많으면서 머리가 펑펑 터지는 영화는 무표정으로 볼 줄 아는 소녀를 알아. 느낌이라는 건 대체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말로 설명할 땐 더더욱. 내가 그때 갑자기 펑펑 울어버린 건 말야.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우주 속을 헤매다 느긋하게 지면에 도착한 느낌. 그건 절대 꿈이면 안되기에 넌 지금 깨어있어, 기뻐해도 좋아, 라는 몸의 알람 같은 느낌이었어.

어릴 땐 별 것도 아닌 거에 눈물이 줄줄 나는 게 지는 것 같고 싫었는데 이젠 내가 아끼는 나의 부분이 됐어.
앞으로도 무뎌지지 않고 느낌들을 받아내면서, 자주 감동 받으면서 살 수 있길.

외계인에 대해 생각하는 소년을 알아. 난 가끔 걔가 하는 엉뚱한 말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지만 따로 이해를 바라지 않는 불친절한 부분이 꽤 근사하다고 생각해.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 그게 사랑엔 더 가깝다고 생각하니까. 벨앤세바스찬의 노래 속 브라스가 꾸욱 들어올 때 처럼 그저 느끼기로. 의심도 질문도 없이 부를 때마다 달려가 기꺼이 몸을 열기로!**

envy라는 단어를 계속 발음해보다가 열등감이 자신의 원동력이라고 했던 애가 갑자기 떠올랐어. 열등감 같은 걸 그냥 인정해버리고 마주보다니. 추락하게 두지 않고 굴려서 힘으로 갖다 쓰다니.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같이 계속 신세계로 갔으면 좋겠다고 해줬던 말도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같이도 좋고 계속도 좋고 어딘지도 모를 신세계도 좋고. 사랑이 받고 싶어서 그런 느끼한 말을 뻔뻔하게 하던 어린 애도 좋았고 그래서 많이 아꼈던 것 같애.


혼자 아플 때마다 서럽지 않게 꼭 와주던 것, 한겨울에 언 손으로 내 지퍼를 올려주던 것, semi-naked의 상태로 기타를 쳐주던 것. 지나고보면 꼭 그런 것만 사랑 같아서 슬프지 않아도 마음이 글썽글썽해지는데 끈질기게 반복되던 몇 해가 있었는데 벌써 얼굴도 노래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게 웃겨. 그래서 다시 핑크를 덧칠하면서도 슬픈가봐. 그치만 나 있지! 연약해지지 않게 아주 두껍게 칠할 거야!



* The Flaming Lips - She Don’t Use Jelly의 가사
** 김박은경 시의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