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사랑이 죽지도 않고 몸 안에서 자꾸 커져
me and my /


나는 늘 바보 같은 것들이 반짝거려 보여서 반짝거리는 걸 보면 오히려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바보 같은 것들에게 별가루를 뿌려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 같아.


우린 서로가 애틋해서 웃다가도 우는 정신병 걸린 어린 애들이었지만(이런 기억은 이젠 웃기지도 않고 쪽팔리지만) 아름답고 날이 선 걔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사랑한다니 더 바랄 것도 부러울 것도 없었어. 그 애의 옆에서 난 뭐가 되고 싶었을까. 뭘로 보이고 싶었을까. 뭔가를 해내겠다고 작당모의를 하는 뒷통수들은 또 왜그렇게 조그맣고 두근거렸을까.

사랑은 해가 지날 때마다 맥없이 죽으려는 횟수가 늘었지만 우리는 런던과 치앙마이에서 신사동과 상수동에서 싸구려 술들을 앞에 두고 바랜 마음을 소생시키려 애를 썼고 실제로 수없이 살려냈고 그럼에도 살려내기를 그만두기로 약속하는 밤을 맞아야하기도 했어. 똑똑히 기억하건대 나는 그날 모든 첫사랑이 끝난 소년 소녀들처럼 사랑이 죽었다고 생각했어. 내가 목격한 첫번째 죽음이었을 거야. 그땐 내가 진짜로 중간중간 기억이 안 날 만큼 불안정하던 때였는데 언젠가 옆에 있던 J가 내게 해준 말이 있어. 네가 진짜 죽고 싶을 때가 오면 같이 죽어줄 테니까 조금 죽고 싶을 땐 죽고 싶단 말 대신 ‘아! 오늘 기분 좆같네!’ 라고 해버리라고. 뭣도 아닌 게 멋있으려고 한 말이었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나서 웃기고 힘이 나. 진짜로 같이 죽어줄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지만 주치의의 오랜 상담보다 살고 싶어진 말이었다는 점에서 J는 정말 똑똑하고 유쾌하고 내가 서울로 여긴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우리가 홀로 서있는 서로를 발견했던 건 우리가 언젠가 사랑하던 것들로부터 떠나왔기 때문이라는, 어쩌면 아주 당연한 생각이 무겁게 나를 누르는 밤이면 나는 그냥 아무것도 사랑하고 싶지가 않아져. 사랑을 나 자신이라고 여기면서도 그런 건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살고 싶어지는데 이게 죽지도 않고 몸 안에서 자꾸 커져.

그 얼굴만 봐도 죽을 것 같던 애들이 가르쳐준 바보 같고 반짝거리는 것들로만 사랑을 배워서 내가 이렇게 똑똑한 척 다 하면서도 멍청한 걸까? 그렇다면 나도 그 애들처럼 반짝거리고 있을까? 어떤 시집의 제목처럼 오늘은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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